FIRE!!!
어제 회사 건물에 불이 났다.

요즘은 아침부터 너무너무 피곤해서 시름시름 하면서 일하고 있으려니까 소방차/응급차 사이렌 소리가 많이 들렸다. 아무래도 한대가 아니라 여러대인것 같았지만 사무실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소방차가 안 보이길래 어디 가까운데서 불이 났나 했는데, 알고보니 그 소방차들이 다 우리회사 빌딩을 둘러싸고 있어서 안보였던 것이었다. 잠시 후 리셉션 언니가 빌딩 측에 문의를 했더니 지하에 불이 나긴 했지만 큰 불은 아니니 그냥 계셔도 된다고 했단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있었다. 우리 상사는 완전 신나서 구경을 간다고 뛰쳐나갔다. 그러더니 3분만에 돌아와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더니 복도에 연기가 너무 심하더라는 것이다. 회사는 13층이고 불은 지하에서 났는데 연기가 어떻게 올라오겠나 싶어서 나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꺼주겠지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만약 큰 불로 번지더라도 지하에서부터 올라오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아 생명연장의 꿈.. 건물내 화재경보나 스프링쿨러도 전혀 작동하지 않고 대피하라는 안내방송도 없어서 마음이 더욱 편안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것 같길래 무슨 연기가 있다고 그러는거야, 하고 복도 쪽에 나가보니까 과연 연기가 자욱한 것이었다. 벌써 리셉션까지 연기가 스며들어오면서 매캐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어떡하지.. 하다가 일단 자리로 돌아와서 앉아있는데, 우리회사에서 내가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부사장님이 뛰어들어와서 '야, 비상구로 대피해 대피해' 그랬다. 물론 부사장님을 사랑하는 나는 얼른 짐을 챙겨서 나왔는데, 사무실의 다른 사람들도 슬렁슬렁(정말 슬렁슬렁) 나오고 있었다. 뭐야 이거 시뮬레이션이야? 이러면서... 건물의 화재 알람은 그때서야 울리기 시작했다.

복도를 통해서 비상구로 가는데 예상보다 훨씬 연기가 심해서 와 이거 이러면 내려가다가 질식할 수도 있겠는데, 하고 걱정했더니 비상계단은 공기가 깔끔했다. 도대체 복도에 무슨 마법을 걸어놓은거냐며.. 40층 건물의 모든 사무실이 비상계단 하나를 통해서 내려가려니 좀 붐비긴 했지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무척 느긋했다. 나는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는데, 내 뒤에 내려오던 사람들은 고용 문제를 상의하고 있더라.

빌딩 뒷마당에 나와서 보니 소방차가 백대 와있었다. 작은 불이라더니 왜 이렇게 많이.. 아마 사람이 많은 빌딩이라 화재 진압이 늦어지면 인명피해가 클 것 같아서 그런것 같다. 덕분에 불은 정말 싱겁게 빨리 꺼졌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층까지 연기가 올라갔던 것은 공기순환 시스템 때문이라고. 다만 건물에 아직 연기가 차 있기 때문에 진화가 끝난 다음에도 바로 출입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었다.

연기가 빠지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회사 사람들은 다 식사하러 가고, 인사부 시다인 나는 상사가 상황을 봐야겠다며 아무데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유도 모른채 건물 뒤뜰에 남아서 상사와 함께 원치도 않는 햇빛을 쪼였다. 그러다 배가 고파져서 컵라면을 사와서 먹고 있으려니까 회사 사람들이 식사를 끝내고 돌아와서 나를 동정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오징어 짬뽕이 먹고싶어서 먹은건데..

결국 일이 마무리되고 사무실로 돌아가도 좋다는 방송이 나온 것은 점심시간이 끝나기 20분쯤 전. 사실 거기서 20분 정도만 더 끌었으면 다들 그대로 집에 돌려보낼 계획인것같았는데 그 20분을 못채워서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연기가 싹 빠진 것도 아니어서 복도 쪽은 여전히 매캐했다. 그러고 나서 한시간 가량을 직원들을 돌려보내네 마네 높으신 분들이 이러쿵저러쿵하다가 결국 두통이나 인후통 등의 증세가 있는 사람은 가도 좋다고 이메일을 돌렸다. 일개 인턴인 나는 감히 집에 가겠다는 말을 못해서 살살 눈치만 보고 있는데 다행히 집에 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고부터 회사에서 그렇게 행복한 것도 처음이었다;;

집에 갈 차비를 하고 있는데 다른 부서 직원이 와서 그랬다.
"저는 회사에서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 처음 봤어요. 작은 불씨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네요"

과연 그렇다. 불이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것...

인명피해는 매우 경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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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일상* 
2009/10/31 03:31, mari.

  1. 슬아 2009/11/08 17:48 Delete Reply
    너도 일하는구나 그래두 큰불 아닌게 어디여.. 무슨 일 하는거야? 많이 바쁜가?
    ㅎㅎ...난 이제 내일부터 출근해봐야 알듯..여튼 블로그 들려줘서 고맙고, 연락해야지 해놓고 ㅠㅠ 못했네..ㅋ.. 다음에 시간 나면 한번 보자고.
  2. 쎄이씨리 2009/11/09 11:33 Delete Reply
    너한테 듣고 살 결심이 서서 문컵 검색했더니만...
    너의 사이트로 들어오는구나 ㅎㅎㅎ
    사이트 주소 잃어버렸었는데 잘 됐다 + = +
  3. 굼벨 2009/11/22 14:36 Delete Reply
    화재를 무덤덤하게 맞을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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