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를 보고 왔는데
왕의 남자를 보고 왔습니다. 이선희씨의 곡을 붙인 뮤비를 본 이후로 꼭 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던것을, 몇 주나 미루다가 며칠전에서야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주말이 되면 꼭 혼자라도 봐야지 봐야지 생각하면서도 늦잠자거나 해서 매번 놓쳤었는데, 이미 한번 봤다는 친구를 조르고 졸라서 한번 더 보게 했습니다. 불광 CGV 1관에서 조조로 봤어요. 자리도 썩 좋았고, 거슬리는 소음도 그다지 없는 편.. 간간이 말소리가 들리긴 했어도 전화벨소리나 팝콘 바스락거리는 소린 없었으니까요.

요 근래 들어서는, 나니아 연대기가 기대에 못미친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 최대의 기대작이었던 왕의 남자. 먼저 본 배신자친구들도 굉장히 좋게 평가하고, 음지의 여성들만이 꺅꺅거릴 것 같았던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많은 남자분들에게서도 좋은 점수를 받는 것 같아서- 매표 창구에서 '왕의 남자'라고 말해도 직원이 나를 호모멘쿠이오타쿠여자로 매도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더더욱 기대만발이었던 그 영화였습니다만.. 어쩐지,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요.

요새 들어서 영화 평점이 10점 만점에 9점 넘어가는 것을 거의 본 일이 없는데, 이것만은 9점을 넘어갔단 말이지요,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딱히 나빴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아니, 괜찮은 축이었어요 물론,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게 훌륭하고 대단한 영화였느냐고 하면, 글쎄요. 미묘한 위화감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사극에서 당연한 듯이 ~하오, ~하옵니다 라고 말하는 데에 익숙해져서 영화의 의외로 현대적인 말투에 적응하지 못한 것일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 이상으로요. 초반부엔 특히나 더. 화면과 '소리'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길과 장생이 그랬지요. 감우성씨의 약간 가벼운 감이 있는 목소리는 알포인트에서는 썩 잘 어울렸는데, 장생 역에는 좀더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백선생님처럼 중후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준기씨의 경우는.. 목소리가 어땠다기보다는 말하는 방식이 약간.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공길 역의 목소리도 이런 담백한 타입보다는 좀더 매력적인 쪽이 좋지만요, 뭐 그건 제쳐두고. 광대놀음을 할 때가 아닌 평상시의 연기가 좀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였던 게 아쉽군요. 광대놀음 때는 좋았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의외의 부분이 마음에 많이 와닿았던 영화였습니다. 쓴소리를 좀 하긴 했지만; 장녹수와 연산의 감정이라던가.. 이런것을 절묘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장녹수 치마 밑로 연산이 기어들어가는 장면이, 정말 센스가 좋았습니다. 그런 동작만으로 연산의 상흔이랄까 그런 것이 비통할 정도로 잘 느껴져서. 그리고 단순히 연산과 공길의 애정사가 아닌 것도 좋았구요. 굳이 말하자면 삼각관계인듯도, 그렇지 않은듯도, 연심인듯도 그렇지 않은 듯도 한, 그런 느낌이 좋았습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한다, 는 명제를 두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니 사랑의 형태를 규정짓지 않았다는 쪽이 옳을까. 좋네요 이런것도.

연산과 녹수 커플은 뭐 달리 할말이 없이, 괜찮았습니다. 연산은 다들 말하듯이 훌륭하게 잘 표현했고, 녹수는 왕을 대하는 태도가 좀 의외였지만 마스크가 워낙 잘 어울리는데다 기생 출신이라던지 그런 것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그런 것 같아서. 그래도 '당신'..은, 진짜 적응할수가 없었지만;;

연출이 좋았는데, 캐스팅이 살짝 미스라서 아쉽습니다. 공길 역에 왜 굳이 신인배우를 썼는지 모르겠어요. 공길과 장생이 좀더 좋았다면 8.5 정도 줬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충분히 좋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오히려 그 공길과 장생이라 더 좋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너무 노여워 말아주세요. 잘한다 못한다가 아니라 어울린다거나 안어울린다거나의 주관적인 문제니까.

전 이제 낙지볶음 먹으러 갑니다. 교환학생 갔다가 1년만에 귀국한 친구가 있어서. 다녀와서 후기 올릴까요? 얼마나 맛있었는지 *-_-*

감상* 
2006/01/18 16:27, mari.

  1. 카르마 2006/01/18 21:24 Delete Reply
    난 서울 낙지볶음 싫어. 웩
  2. 유제 2006/01/19 00:31 Delete Reply
    원래 장녹수는 연산군에게 반말하고 욕하고 하대하고 그랬다지.. 연산은 그걸 굉장히 좋아했대. 물론 녹수가 완급조절을 잘 했다고는 하더만;
  3. 미루키 2006/01/19 10:44 Delete Reply
    연산은 녹수에게 어머니를 갈구했기 때문에 왕임에도 불구하고 하대할 수 있었던 게지요. 그런 연산의 감정을 잘 이용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녹수의 캐릭터는 매력적입니다.
    왕의 남자는 아무래도 너무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 있는 영화인가봅니다;;
    주위에서도 기대하고 갔더니 별로라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어서요 ^^
  4. 더 많이 잃기전에...™ 2006/01/19 12:55 Delete Reply
    낚지볶음...소주한잔 곁들여서.../질질
  5. 遊異 2006/01/20 00:47 Delete Reply
    저는 꽤 재밌게 보고 왔습니다. 제 점수는 9.5정도? 이준기씨의 연기력이 좀 딸린다는 기분은 들었지만, 그래도 예뻐서(...) 용서해주기로 했습니다. (<-- 꽤 밝힙니다, 전;;)
    그나저나 저도 감상문 써야하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군요. 아아, 곤란합니다, 이런 태도.=_=;
  6. 엘리타쥬 2006/01/20 22:27 Delete Reply
    마지막 단락, 미묘하게 상상을 자극하는군요. 갑자기 위산이 솟는 기분이예요. ;;
  7. mari 2006/02/03 11:33 Delete Reply
    동찬// 초치니까 좋으냐..

    유제// 음 근데 그 뭐랄까.. 역시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말투 자체가 현대어라서 좀 위화감이 있었던게 아닌가싶어.

    미루키님// 음 근데 녹수란 여자도 참 대단한여자예요. 그런거 잘못했다간 바로 목이달아날 일인데 어떻게 어떻게 잘..;;

    태초님// 저는 술을 못마셔서 그냥 밥한그릇 곁들여 먹었답니다.

    유이님// 와, 점수 많이 주셨군요. 의외로 취향에 따라서 좀 갈리는 영화일지도 모르겠어요.

    엘리타쥬님// 후후 지금생각해도 침이... 낙지볶음은 근데 광화문쪽이 제일 맛있는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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