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모험기
글은 안 쓰다보면 어떻게 쓰는지 까먹는다. 글이랍시고 그냥 일기대용으로 끄적거리는것뿐이지만 타고난 쇼맨쉽 때문에 포스팅을 써놓고도 재미가 없으면 공개를 못한다. 병이야 병...

귀국한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사실은 간단하게나마 런던,로마,스페인 북부를 보고 들어올 계획이었던지라 막판에는 아일랜드를 떠나기 아쉬운 마음보다 여행과 귀국에 대한 설레임이 더 컸었다. 그런데 큰 행운은 없어도 큰 불운 없이 무탈했던 인생에 하필이면 그때 일이 생기는 바람에 먼 땅에서 고생을 좀 했다. 사실 이만큼 덤덤하게 쓰는 것도 그동안 친구들한테 많이 징징거려서 그렇지 처음 귀국했을때는 우울하고 억울하고 그랬던 것 같다.

여행 둘째날 영국 런던에서였는데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다. 이탈리아도 스페인도 아니고 영국이라, 그런 부분에 관해서는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지갑은 항상 카메라 가방에 넣는데다 카메라 가방을 몸에서 떼어놓질 않으니 크게 걱정할건 없다고 생각했다. 소매치기의 아트를 너무 우습게 본거다.-_-;; 멀쩡히 메고 있는 가방에서 기척도 없이 지퍼 열고 지갑을 꺼내갈 수 있을줄은 몰랐지. 아일랜드에서 방 빼면서 보증금 돌려받은 것도 있었던 터라 현금도 전에없이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으니 현금을 분산해서 보관할 생각조차 못하고 바보같이 그냥 다 지갑에 넣어뒀었다. 그것만 해도 손해가 꽤 컸는데 당연히 신분증이며 은행 ATM카드 같은 것들도 다 지갑에, 심지어 수트케이스 열쇠까지 지갑 동전칸에 넣어뒀던 터라 정말 난처한 일이었다. 당장 쓸 현금도 없지, 카드가 없으니 현금을 구할 방법도 없고, 그 와중에 짐은 30kg은 후딱 넘어가게 짊어지고 다니는데 수트케이스 열쇠가 없으니 의미없는 짐덩어리일 뿐이고, 랩탑도 수트케이스에 넣어뒀으니 인터넷 접속도 못해, 당장 영국땅에 친구한명 없고 예약해둔 숙소에는 돈을 내야하는데 돈이없으니 당연히 잘데도없어.. 생각해보면 그 와중에 어떻게 추스리고 살아서 돌아왔는지 참 나도 질긴 명이구나 싶다.

결과적으로는, 이상한 말이지만, 그런 불운에서도 자잘한 행운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신고하러 간 경찰서에서 국제전화를 쓰게 해줘서 한국에 연락이 닿았고, 그 경찰서에서 만난 미국인 부부가 불쌍하다고 20파운드를 줬다. 모르는 사람한테 선뜻 줄만큼 적은 돈이 아닌데 고마운 사람들이다. 메일주소라도 물어봤어야 하는건데 그때는 막 소매치기 당한 직후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고맙다고 하고 받았었다. 경찰관도 무척 친절했다. 주말이라 한국 대사관도 전화를 안받고 응급상황시 연락하라던 당직자 핸드폰도 답이없어서 난감해하고 있으려니까 정 잘 데가 없으면 경찰서에서 자도 된다고 했다. 당장 하룻밤 잘 곳 보다도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더 난감했던 상황이라 결국 그전날 신세졌던 분한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이분은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만나 쪽지 왕래만 서너번 해본게 전부라서 아는사람이라기보다 모르는 사람에 가까웠다. 어떻게 하다보니 그분 댁에서 전날 하루 신세를 진거였는데, 일이 그렇게 되어서 정말 면구스럽지만 인터넷을 좀 빌려써도 되겠냐고 부탁했다. 그래서 비행기표도 금방 예약하고, 하루 더 있어도 좋다고 하셔서 그냥 편히 자 버렸다. 잠이 올까 싶었지만 오히려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죽은듯이 오래오래 잤다.

다음날에는 경찰서에서 만난 부부한테 받은 돈으로 공항까지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아마 그 돈이 아니었으면 이거 걸어갈수도 없고 참 난감했을 것이다. 남은 돈으로 서점에서 책 한권을 사고, 그러고 나니 소매치기 당하고 이틀동안 물만 먹은게 생각나서 크림치즈 연어 베이글도 샀다. 이제 집에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안심이 되어서 그런지 갑자기 배가 무척 고팠는데 베이글 포장지를 벗기는 순간 베이글을 떨궜다. 물론 크림치즈 있는 면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너무 배가 고프기도 하고 공항 바닥은 깨끗해보여서-_-;;; 그냥 주워 먹었다. 물론 엄청나게 맛있었다.

서울행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패배감이 들어서 좀 울었는데, 이륙해서 안정되자마자 밥을 주는 바람에 그런 싸구려감성도 오래가진 않았다. 비빔밥이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기내식이 맛없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평소에 얼마나 맛있는걸 먹고 사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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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일상* 
2009/08/13 23:28, mari.

  1. 굼벨 2009/08/20 12:33 Delete Reply
    짬밥도 맛있다.
    ...

    그래도 다행히 긴박한 상황 속에서 도움 많이 받았네, 근데 미국분들은 무슨 일로 그쪽 경찰서에 오셨었대?
    • mari 2009/10/23 11:48 Delete
      그사람들도 소매치기 당해서 온거야; 그런데 따로 챙겨둔 현금이 있다고 좀 나눠준거지.. 고마웠다 ㅠ.ㅠ
  2. 굘님 2009/09/12 23:41 Delete Reply
    눈물 젖은 빵이다[...];
    • mari 2009/10/23 11:49 Delete
      ㅇㅇ 진짜 그래
  3. arcat 2009/09/29 17:05 Delete Reply
    네 블로그 주소를 포함해서 다른녀석들 것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려 검색으로 들어왔단다. 시험날짜가 한달두달 다가오니까 더 놀고싶어서 막 억누르느라 힘들어라...엉엉엉. 추석 잘 보내고!

    그리고 난 기내식이 너무 싫어서, 식사를 나누어 줄땐 자는 척을 하곤 해.
    (그냥 거절하는 것도 귀찮고 하니까.)
    • mari 2009/10/23 11:49 Delete
      시험이 언제닝?
      보고싶다 ㅠ.ㅠ
      11월초에 우리 만나는거지?!
  4. 쎄이씨리 2009/11/26 08:56 Delete Reply
    일본 비행기 기내식은 별로야 ㅎ
    고생 많이 했네.
    니 글 디게 재밌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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