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폭한 상상력, 그게 없구나
글 공부를 할 때, 그러니까 정말 말 그대로 소설 쓰는 공부를 했었던 작년 겨울이었다. 같은 수업을 들었던 문창과 학생들의 글은 대다수가 형편없었지만, 그중에도 정말 월등하게 뛰어났던 작품들이 서넛은 있었다. 그 중의 한 작품을 가리켜서 교수님은 '광폭한 상상력'이라 했다.
상상력이라는 이름의 말을 자기가 선 그어둔 범위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라, 해서 나는 또 오오오 우와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그 고삐라도 한 번 놓아준 적이 있었나 싶다.

자비심이 많은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실제 내 상상은 너무 깊은 어둠을 못 견뎌 한다.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대고 괴롭히는 작품들을 보는 걸 좋아하면서도, 막상 내 머릿속에서 그런 장치를 스스로 만들어내려 하면 그럴 엄두를 못 내는가보다. 뭐가 무서워서, 생각해봤는데 나는 그걸 수습할 자신이 없는거다.

지금껏 몇 안되는 글과 만화를 끄적거려 오면서, 암시적인 불행이나 우울 이상의 어두운 덩어리를 작품 말미에 부여해 본 적은 한번도 없다. 해피엔딩은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다고 절망, 깊은 슬픔, 그런 것들을 쓰는 것도 아니다. 아는 것이 없으니 당연하다. 인스턴트같은 가벼운 해학이나 우울 정도가 알맞지, 도무지 그 이상으로 깊게 내밀하게 감정을 파고들어가질 않으니까. 모르는데 쓸 수 있을 리가 없고 그래서 그런 깊은 것들을 꺼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뻔하게 내 얕은 바닥이 보일까봐.

그렇다고 이제와서 어디 그 깊은 바닥까지 파헤치고 들어가보자 한들. 그래 그 바닥까지 파고들어가서 생각의 혹은 감정의 정수를 손에 잡는게 얼마나 힘든지,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나를 채찍질하고 몰아넣고 격리시켜야 하는지 내가 모르나. 그리고 이 게으른 나를 내가 모르나.

그러니 내가 언제쯤 그 상상력이라는 놈의 고삐를 놓아 줄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작가를 업으로 삼지 않기를 잘했다.

부스러기* 
2008/10/29 13:10, m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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