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얘기가 그얘기입니다 네
요새 너무 포스팅이 없는것같기도 하고 해서 이거라도; 팬 여러분 죄송해요 팬이 있다면 말이지만.. 개강하고 워낙 정신이없다보니 비공개포스팅만 쌓여있고, 조만간에 마무리해서 몇개 올리겠습니다.
아래 올린 것은 이번학기에 듣는 문예창작과 소설창작실습 과목 과제입니다. 무슨생각이었는지 세월아 네월아 놀다가 막판에 마감시간 세시간 넘겨서 완성; 분량도 아주 간신히 겨우겨우 채웠습니다. 만화 원고든 소설 원고든 똑같아요. 제버릇 개 주나요.
건너편 복도
“썅년! 이 개같은년!”
열어둔 베란다 문 사이로 훅훅 찌는 무더위만큼이나 찐득한 욕설이 들린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궁금해 할 필요도 없다. 전세로 얻은 이 집에서 처음으로 맞은 올 여름 사나흘에 꼭 한번은 그 목소리를 들었으니, 비록 얼굴 한 번 본 일이 없기는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을 새삼스레 낯설다 말하는 것도 우스울 일이다. 50대 초중반쯤 되었을까 싶은 중년의 부인, 아니 부인이라고 하기에도 좀 멋쩍은 그 여자의 목소리는 악의와 독기를 뚝뚝 흘리며 한음절 한음절을 씹듯이 끊어낸다. 그 여자의 욕설은 꼭 썅년 개같은년만이 아니었다. 온 나라의 년이란 년을 섭렵하고도 모자라, 가끔은 그 창의력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찬사를 보내게 하는 새로운 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바로 그 여자, 802호였다. 처음에야 무슨 연유인가, 싸움의 판도는 어떻게 되는가 싶어 열심히 귀를 기울였으나 최근 몇 주간의 충분한 귀동냥으로 나는 이 빈번한 소동에 특별한 이유나 양상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02호의 욕설은 언제나 느닷없이 들려오고, 상대 여자는 그게 누구든, 801호든 803호나 4호, 혹은 그 아래층 여자들이든, 802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자기들 딴에는 나름 표독스럽게 반격을 해 보지만 그러면 802호는 오히려 더 기세가 등등해지고 목청이 높아지는 것이다. 802호의 유창하고 다채로운 욕설은 대개 15분에서 20분이면 사그라든다. 그 여자의 레파토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쯤이면 상대 여자 쪽에서 먼저 후퇴를 하기 때문이었다. 굴욕적인 후퇴는 간혹 귀신같은 곡소리를 동반하여 그렇잖아도 심란한 109동 주민들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곤 했다.
평수가 작은 아파트들이 으레 그렇듯이 홍은동 벽산아파트 109동도 ㄱ자 모양의 복도식 구조인 탓에, 탓인지 덕인지, 우리 집 810호 베란다에서 내다보면 802호의 주 무대인 건너편 복도가 훤히 보이지만 이제껏 그런 장면을 직접 목도해 본 적은 없다. 남편이 싫어하기도 하거니와, 나 자신도 우리의 태어날 2세를 위해 속된 호기심쯤이야 참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 왔던 탓이다. 그러나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한 귀로 흘려넘기던 것도 오늘처럼 무덥고 지루한 날 또 이토록 선명하게 802호의 목소리가 들리면, 궁금증을 억누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육시랄 년, 껍질을 벗겨먹어도 션찮을 년아! 어딜, 문을 그렇게 활짝 열어놓고!”
문을 열어놓고 누가 뭘 어쨌다는 것일까, 청국장이라도 끓였나? 갑자기 남들은 구수하다고 하고 나는 역겨워하는 그 청국장 냄새가 여섯 집 복도를 지나 기역자로 꺾어서 우리 집 문틈까지 새어 들어오는듯한 기분이 든다. 아니면 정말은 옆집이나 그 건너 집에서 오는 냄새일지도 모른다. 저녁에 먹으려고 해동해둔 삼치를 다시 냉동실에 넣을까 고민하고 있으려니, 건너편 현관문이 부서져라 닫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런데도 802호의 악다구니는 누그러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잡년! 나와!”
바람 한점 불지 않는 베란다 창에 벽처럼 드리워진 블라인드에도 일말의 숨통은 필요할 것이었다. 나는 한 뼘 가량 블라인드를 제치고 내다보았다. 굳게 닫힌 철문이 일렬로 늘어선 건너편 복도가 보인다. 그 앞을, 802호일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를 윤곽이 서성이고 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802호가 다른 여자의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패악을 부리는 장면을 기대했던 것도 같고, 그냥 802호가 어떻게 생긴 여자인지 구경이나 해 볼 수 있기를 바랐던 것도 같으나, 이미 어둑해진 날 탓에 단지 그 윤곽이 사람이라는 것만 겨우 알 수 있을 뿐이었다.
802호와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 모습의 윤곽이 이쪽을 향해 빙글 돌아섰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시선을 교환했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를 보았듯이 그녀도 빛을 등진 나의 윤곽을 한 뼘의 블라인드 틈새로 보았을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백분토론의 손석희씨가 내게 “안정임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물으면 이런 느낌일까. 나는 구경꾼, 시청자였을 뿐 일에 개입하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는 802호를 못 본척하며 블라인드 뒤로 도망쳤다. 사실 그녀가 이쪽을 보았다고 해서 꼭 나를 발견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7~12호 라인의 백여 세대 가운데서 나는 단지 그 많은 네모난 창문들의 1/108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애써 쥐어짜낸 몇몇 개의 자기위안과 변명들은 802호의 방문에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802호였다. 운명은 싫은 일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자비롭지 않았고 802호 그 여자 또한, 없는 시비를 만들어서 걸고 다니는 마당에 자기의 추태를 목격한 이웃집 여자를 웃어넘겨줄 만큼 너그럽지는 않았다. 그녀의 방문은 새소리로 우는 초인종이 아니라, 현관문에 지극히 원시적으로 주먹과 발이 부딪치는 소리를 동반했다. 하기사, 그녀의 기세 등등한 원정에 쫑쫑쫑 우는 전주곡은 어울리지도 않는다. 북이나 뿔피리가 아닐 바에야 차라리 그런 패악이 그 여자에게는 어울린다.
802호 여자와 튼튼한 철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그닥 위안이 되지 못했다. 외려 그 텅텅 울리는 현관문은 그녀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해서만 있는 장치인 듯도 하다. 그 여자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가깝게 들렸지만 정작 귀를 통해 흘러들어와 뇌에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숨이었다. 숨소리라는 것은 어쩌면 내 상상일는지도 몰랐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도 않다. 어쨌든 문 너머에 있는 802호는 현실이니까.
복도 쪽으로 면한 작은방 창문을 열어 두었던 것에 생각이 미친다. 간간이 문 두들기는 소리가 멈출 때면 아마도 그 창문으로 집안을 기웃거리고 있을 것이었다. 사각지대인 거실 한 켠에 서서 나는 혹시 인기척이라도 낼 세라 숨 한번 크게 못 쉬고 굳어 있었지만, 그런다고 그 여자가 속아줄 리는 만무하다. 철컥 철컥, 문고리가 돌아간다. 문은 잠겨 있었으나 나는 차라리 기절하거나 간질 발작이라도 일으켰으면 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함소리 문 두들기는 소리가 잦아들고 질질 끄는 발소리가 멀어진다. 그런 후에도 나는 한참을 의심했다. 내가 방심하고 움직이기를, 작은방 창문 너머에서 그 여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얘, 작은방 창문 열어놓지 말아라.”
지난달 친정 어머니가 다녀가시면서 하는 말씀이 그랬다. 임신한 딸 챙긴다고 김치며 불고기며 바리바리 해 오신 어머니를 두고, 아직 부르지도 않은 배를 핑계로 한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을 때였다.
“왜요? 더운데.”
“아까 작은방서 송 서방 와이샤쓰 몇장 대리다가,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길래 보니까 창문으로 어떤여자가 들여다 보고 있지 않겠니.”
“들여다 봐요?”
“눈이 마주쳐두 피하지두 않구 쳐다보는데 괜시리 섬뜩해서..”
와이셔츠는 그냥 두시지 뭘 힘들게, 하고 인사치례 하는 입은 무안하였으나 늙어가는 어머니에게 사위의 셔츠 다림질을 시켰다는 죄책감보다도 앞선 것은 섬뜩함이었다. 창문으로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낯선 여자의 이미지가 주는 서늘한 공포. 우리집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생긴 여자예요.”
“어떻게 생기긴, 그냥 아줌마지 뭐.”
“그래도 얼굴 생김이 있을 것 아니에요. 나이라든가.. 독하게 생겼드래요?”
“독하게 생기구 말구 할것도 없어. 그냥 아줌마야. 그렇게 쳐다보고 섰으니 무섭긴 하더라만은..”
그냥 아줌마. 그 여자의 눈이나 입에 대해서 몇 차례 더 물었지만 어머니는 그냥 아줌마더라 하는 이야기만 자꾸 했다. 일 없이 남의 집 창문을 들여다보는 여자라 해서 꼭 눈빛이 형형하고 범상치 않게 생기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섬뜩하고 찝찝하다 여기면서도 나는 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 여자는 ‘그냥 아줌마’지, 머리가 모자라거나 미친 여자는 아니리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이다.
수화기 너머에서 남편은 오늘 늦어, 하고 말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애교있게 부탁해볼 참이었으나 피곤과 짜증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그에게 그런 말을 하기는 어렵다. 결혼 4년만에 들어선 아이를 핑계로 멀쩡한 직장에 사표를 낸 나를, 남편은 요즘 곱지 않게 본다. 보란듯이 빈번해지는 그의 야근이 나를 더욱 무안하게 한다. 결국 나는 알았어, 일 열심히 해, 라고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식물원같이 덥고 습한 날씨. 베란다 바깥문을 열어놓아도 바람은 불지 않는다. 작은방 창이라도 열어두면 훨씬 나으련만, 그 날 이후 며칠에 한번꼴로 찾아와 그 난리를 부리는 802호를 떠올리면 차라리 이 더위에 숨이 막혀 죽는 것이 더 안전하게 여겨진다. ‘그 날’,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홑이불은 다리에 척척 감기고 땀냄새가 나는 매트리스는 불쾌했다. 좀 끈적해도 찬 기운이 남아있는 거실 바닥이 차라리 나았다. 모서리 벽에 등을 대고 모로 누웠다. 날은 아직 밝아오지 않았고 아침마다 기승을 부리는 새 소리 매미소리도 없이 냉장고만이 웅웅 울고 있었다. 거기에 질질 끄는 육중한 발소리가 섞여 들었을 때, 나는 피가 식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를 맛봤었다. 소리는 처음에는 희미했다가 점점 선명히 가까워지고, 서성거리기도 했다가 불안하게 침묵하기도 하고, 복도 끝으로 가는듯도 하더니 다른 편으로 사라졌다. 신경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802호는 여덟시나 아홉시께 온다. 처음에는 문을 탕탕 두드리고 여보세요 좀 나와보세요, 하고 시작해서 내가 숨을 죽이고 있으면 혼자서 창문을 두드리고 문 손잡이를 돌리고 악을 쓰며 화를 내다 어느순간 제풀에 지쳐 발을 끌며 돌아가는 것이 그 여자의, 아니 우리의 패턴이다. 아파트 경비는 문 열어주지 말고 무시하라는 이야기만 속절없이 했다. 그 여자네 옆집은 더 골치 썩고 있다는 그의 말은, 뭘 그런걸 가지고 엄살이냐는 뜻으로 들린다.
“그 아줌마는 가족이 없나 봐요?”
“웬걸요, 남편에 아들까지 있지요.”
“그럼 가족들은 왜 그 아줌마가 그러는걸 그냥 두고 보지요?”
그는 허허 웃는다. 나는 보란듯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무튼 경찰에 신고를 하든지 해서 못 그러게 해얄 거 아녜요.”
그러나 단지 이웃 주민들에게 싸움을 걸고 다닌다는 정도로는 경찰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나도 알았다. 어쩌겠어요 좀 조심하셔야지, 그래도 해코지는 안 해요, 하는 걸로 경비는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그래, 그가 무엇을 어쩌겠는가.
남편은 경비보다 좀더 직접적인 말로 응수했다.
“그래서 지금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야?”
사실 경비의 ‘어쩌겠어요’ 하는 말도 정확히는 이런 뜻이었으리라. 그러나 남편과 나는 경비와 아파트 주민보다는 친밀한 사이였기에, 나는 경비에게 했던 것처럼 그래요 어쩌겠어요, 하고 물러서지는 않았다.
“자기가 좀 일찍 들어와주면 안돼?”
“내가 노니? 술먹고 놀다가 늦게 들어오는거같니 네 눈엔?”
그도 우리가 보통보다는 친밀한 사이라는 것을 이용한다. 이만큼 친밀하지 않은 사이라면 상대에 대한 배려와 예의로 의당 감추었을 말의 가시가 뾰족뾰족 돋아 있다.
“내가 야근을 하고 싶어서 하냐고, 말해봐. 엉?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 내가 회사 그만두고 네 옆에 24시간 붙어있을까? 그 아줌마 오면 쫓아 주고?”
“아니, 내 말은...”
“너도 회사생활 해봤으니까 알거 아냐. 정신없이 바쁘고 힘든데 혼자 야근 쏙 빠지면서 안 잘리는 방법 있음 좀 알려주라. 그럼 내가 6시 칼퇴근해서 매일 너랑만 놀아줄게.”
침묵. 그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야 내가 뭐라고 더 할 말은 없다. 괜히 그릇을 달그락거리며 평소보다 오래 설거지를 했다. 거칠어지는 손에도 불구하고, 설거지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한가지는 그래도 찬물에 손 담그고 있으면 어느정도는 더위가 가신다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도 어색하거나 적대적인 분위기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그락달그락. 나는 설거지를 한다. 무심하게 티브이에 채널을 고정한 그의 귀에 확실히 들리도록, 그러나 너무 의도적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게.
“너 임신하고나서 예민한거 알아. 요즘 너무 피곤해서 신경을 못 썼다.”
손의 물기를 터는 내 등에다 대고 그가 말을 던진다. 자못 자상했으나 결국은 임신한 나의 예민함 탓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라는 식상한 문구로 나는 책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소설이나 산문집이 아니라 서사시가 될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를 후렴구로 넣은. 나는 괜찮아, 하며 반도 안 찬 음식쓰레기 봉지를 내밀었다. 그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무심하게 보이기를 바란다.
상황은 무엇 하나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숨통 조이는 더위, 남편의 무심, 802호의 방문. 그 여자가 오는 시간이면 다른 일은 아무것도 되지가 않는다. 나는 파블로프의 개 같았다. 그 여자 특유의 발소리가 들리면 나는 다가올 공포를 준비하며 아드레날린을 분비했다. 낮이면 이제 802호의 행패에 익숙해진 것도 같고 무섭지도 않을 것 같았으나 막상 그 여자가 문 앞에 서있으면 숨 한번 크게 쉬어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 여자’에게도 나는 별반 다르지 않다. 벌써 한 달이나 넘게 가지고 있었던 그 여자의 번호를 나는 한번도 끝까지 눌러보지 못했다. 대신, 나는 상상을 한다. 그 여자의 짙고 이지적인 눈썹과 또렷한 이목구비, 은근히 몸매를 드러내는 검은색 바지정장 같은 것들을. 한번은 만나봐야 할 터인데..하다가도 아무려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그 여자도 802호처럼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두 달이나 열어본 적 없었던 화장품 서랍을 연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한번도 화장을 하지 않았다. 아이라인을 벌써 여섯 번이나 고쳤지만 기분 탓인가, 전같이 날렵하고 깔끔한 모양새가 아니다. 눈썹은 아무리 다듬어도 비대칭인 것만 같다. 별안간, 내가 예쁘지 않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는 굴욕으로 느껴진다. 그럴수록 나는 정성들여 진한 화장을 했다. 배를 꽉 죄는 보정속옷 안으로 벌써부터 땀이 찬다. 투피스 정장이라면 굳이 코르셋을 입지 않아도 될 것이었으나, 나는 굳이 은회색 원피스를 골랐다. 비싼 옷이었다. 신혼 초에 구입해서 아직 열 번도 채 입지 않은, 드라이클리닝 비닐이 씌워진 채 늘 옷장 한구석에 모셔져 있는 그 옷을 오늘은 입어야만 할 것이다.
부러 10분정도 늦을 작정이었으나 여의도의 그 커피숍에 도착한 것은 약속한 시간보다 15분이 일렀다. 덥다. 모양새가 빠진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커피숍에 들어선다. 오랜만에 하이힐을 신은 발은 벌써부터 부어오르는 것 같다. 그 여자와 마주앉아 커피를 마시는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미리 커피를 주문했다. 차고 달았다.
여자는 약속시간에 꼭 10분을 늦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를 눈여겨 보지는 않았었다. 다소 통통한 그녀가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또렷이 내 쪽을 향해 걸어올 때에야 나는 그녀가 그 여자임을, 알아보았다. 귀염성은 있지만 예쁘지는 않은 여자다.
“죄송해요, 늦었어요. 안정임씨 되시죠.”
여자는 내 이름을 알고 있다. 어떻게 알았을까. 불쾌한 기색을 비치자 그녀는 웃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달리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 웃는 얼굴에서 초조나 긴장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안정임씨, 라는 칭호보다 더 불쾌한 사실이었다. 아, 그녀의 여유. 그런 종류의 여유는 독신자들이나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백만원은 족히 호가할 그녀의 핸드백은, 반짝거리는 구두코는.
“저, 강재용씨와는 생각하시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정작 약속을 잡아 놓고도 난감해 하는 내게 그녀가 선수를 친다.
“제가 생각하는 사이가 어떤 사이인줄은 어찌 아시구요.”
“우린 그냥 친구예요.”
퉁명스러운 내 대답에 그녀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등을 곧게 편 그녀는 너무나 상큼하고 발랄해서, 불륜 상대의 부인과 대면하게 된 여자라고는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냥 일 관계로 만나서 저녁 몇 번 같이 하고, 공연 몇 번 같이 본게 다예요. 친구끼리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
“정 싫으시면 이젠 안 만날게요. 일 때문에 만나는거야 어쩔수 없겠지만, 그것도 이해 못하시는건 아니죠?”
남편이 공연을 보러 다닌다니,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그는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스포츠 중계나 보면 족한 남자가 아니었나? 나는 애꿎은 커피잔의 로고를 손톱으로 긁는다. 주문은 뭘로 하시겠냐고, 검정색 앞치마를 두른 종업원이 묻자 그녀는 ‘친구’를 선언할 때처럼 발랄하게 그를 물렸다.
“지금 갈 거예요. 저, 정임씨, 저 먼저 일어나야 하겠어요. 커피 천천히 드세요. 먼데까지 와주셨으니까 찻값은 제가 내고 가요.”
올 때도 내 계획만큼 10분을 늦었던 그녀는 갈 때도 내 계획을 앞질렀다. 내 앞에 놓인, 반잔 남은 냉커피가 무색하다. 나는 조금 더 긴 대화를 기대했었다. 얼굴이 예쁘고 머리는 조금 나쁜 남편의 바람상대를 좋은 말로 점잖게 타일러서 죄송합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하는 다짐을 받고, 커피잔 안에 눈물을 퐁퐁 떨어뜨리는 그녀를 뒤로 한 채 먼저 커피숍을 나오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찻값을 내가 계산하는 것이 계획의 일부분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냉커피의 얼음이 다 녹도록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열 번인가 열한번인가 울리고 요즘들어 습관이 된 것 같은 그의 짜증스런 목소리.
“어, 나야. 왜?”
“나 지금 여의도에 있어.”
여의도라는 말에, 그의 목소리가 한층 험악해진다.
“여의도엔 왜? 나 지금 바뻐.”
“자기 만나러 온거 아니야.”
“그럼?”
“그 여자 만나러 왔어.”
남편은, ‘그 여자라니?’하고 정말 모르겠다는 투로 중얼거린다.
“자기가 요즘 만나서 밥도 먹고 공연도 보러 가고 하는 그 여자 말야.”
“...”
“무슨 공연 봤어?”
“...”
“자기가 그렇게 문화적인 남자인줄 나는 몰랐네?”
자 어서, 잘못했다고 해. 미안하다고 해. 그렇게만 말하면 한번은 봐줄 용의가 있어. 나는 속으로 그를 독촉했다. 그러나 그의 아리송한 침묵은 오히려 나로 하여금 쫓기는 기분이 들도록 한다.
“그 여자가 이제 자기 안 만나겠대. 몇 달만 참으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 태어날 아이한테 부끄럽지 않아?”
태어날 아이. 이런 대화에 ‘태어날 아이’라는 단어는 진부하고, 질척했다. 어쩌면 나는 아이를 그런 식으로 거론하지 말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야, 너 미쳤니? 왜이래?”
그는 되려 화를 냈다.
“넌 내가 바람이라도 피웠다고 생각하나 본데, 나 그여자랑 그런거 없어. 만났으면 알 거 아냐. 막말로 내가 그여자랑 잔것도 아니고 밥한끼 먹고, 어쩌다 친구로서 공연 한번 같이 보고, 그게 다야. 네 말마따나 뱃속에 애도 있는데 그러고 싶든? 쪽팔리지 않아?”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택시비를 치르자 수중에 남은 돈은 천원짜리 몇장뿐이었다. 그 여자가 커피값을 내지 않았다면 택시를 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차 문을 열고 아스팔트에 한 발을 내딘 순간 아무리해도 익숙해질수 없는 무더위와 발가락 끝의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자, 역시 택시를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하늘은 금방이라도 한바탕 퍼부울 것처럼 어둡다. 아파트 정문 앞에 심어진 이름모를 나무는 벌써부터 젖은듯이 가지를 늘어뜨렸다. 끈적한 목덜미, 구두 안에서 몇시간째 꼭 조여진 발이 참을 수 없이 짜증스럽다. 아니, 짜증스러운 것은 뻔뻔스러운 남편과 지나치게 상큼한 그 여자다. 그리고 그 뻔뻔스러운 남편과 야비한 나 사이의 아이, 귀찮은 일은 나몰라라 하는 경비와 이웃들, 이 지긋지긋한 더위, 습기, 더위, 더위, 더위.
좀더 화를 냈어야 했는지도 몰라. 그렇게 순순히 납득한척 하기 전에 좀더 화를. 너무나 여유로운 그녀가 먼저 일어나겠다고 할 때 그 손목을 붙들어 앉히고 네 할말만 다 하고 가면 다냐고, 친구니 뭐니 말은 하지만 아내 몰래 유부남과 놀러 다니면서 네 마음이 그리 떳떳하고 좋더냐고, 802호 그여자처럼 아니 그여자보다 더 미친년처럼 썅년, 개같은년 욕을 했어야 했다.
그럴만한 용기가 있었더라면 남편도 내게 그따위로 하지는 못했으리라. 나는 전화가 아니라, 남편의 사무실로 쳐들어 갔을 것이다. 802호처럼 승전의 북을 둥둥 울리면서. 자기 아이 낳아줄 마누라한테나 잘할 일이지 여우같은 년하고 데이트하니 좋더냐고, 이게 바람이 아니면 무엇이 바람이냐고 부둥켜 안고 뒹굴어야만 꼭 바람이라는 말은 누가 하더냐고, 분에 못이겨 따귀라도 한 대 올려붙여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파트 상가의 슈퍼마켓에서 우리 동까지의 높지 않은 언덕을 걸어올라가는 동안 하드는 벌써 녹아 뚝뚝 덜어지고 있었다. 1층에 멈춰있던 엘리베이터의 단추를 누르자 즉시 철커덩, 입을 벌린다. 기다렸다는 듯이 스르르 양쪽으로 벌어지는 문과 그 뒤의 네모진 공간이 괜시리 꺼려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고층 아파트의 편리에 20년 이상을 길들여진 내가 익숙해질 수 없는 단 한가지가 있다면 그게 바로 엘리베이터였다. 그렇다고 특별히 트라우마가 될만한, 엘리베이터와 관련한 나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주기적으로 악몽을 꾼다. 늘 같은 꿈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의 층수가 제 멋대로 뒤바뀌기도 했고 내가 가려는 층만 버튼이 빠져 있기도 했다. 원하는 층수의 버튼을 찾으면 이번에는 엘리베이터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끝없이 추락하거나 상승함은 물론이고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가 단숨에 추락해 본 것도 여러번이다.
엘리베이터는 달달거리며 느릿하게 끌어올려진다. 하드가 녹아 떨어진 물이 엘리베이터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처음 한 입이 그렇게 달고 시원했던 하드는, 표면이 슬슬 녹아내리면서 입술에 혀에 들척지근하게 감겨든다. 어서 끈적한 손바닥을 씻고 싶다. 발가락을 쉬게 해주고 싶고, 답답한 코르셋도 얼른 벗고싶다. 더운물과 찬물에 번갈아 샤워를 하고 나면 이 짜증스러움이 한결 가실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언제나와 같이 8층에 멈춘다. 1층부터 18층까지의 버튼은 한 개도 빠짐없이 제 자리에 있고, 꿈에서처럼 제멋대로 추락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반질반질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거기에 비치던 내 얼굴이 둘로 갈라진다. 중년의 부인이 엘리베이터 문 앞에 바짝 서 있었다. 목 늘어난 티셔츠에 도드라진 젖꼭지로 눈이 간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쳐지고 퍼진 가슴에 괜히 민망해진다.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 밑에는 화장실 슬리퍼를 신고, 손에 든 쓰레기봉지에서 썩은내가 나는 국물이 뚝뚝 떨어졌다. 잠깐 새에 음식찌꺼기 냄새가 진동을 한다. 코가 절로 찡그려진다. 엘리베이터 문은 좁았다.
“이 썅년아, 뭘 아래위로 훑어보고 지랄이야!”
대뜸 내지르는 이 우렁찬 욕설. 802호다. 온갖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던 머릿속이 뽀득뽀득, 하얗게 지워진다. 아아, 엘리베이터의 악몽.
덜커덩,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하자 802호는 내 머리채부터 잡아챘다. 고약한 음식쓰레기 냄새가 그 여자 손에도 묻어있다. 왜 이러세요, 라고 어떻게 진정이라도 시켜 봐야 할텐데 목소리도 제대로 나와 주지 않는다. 억지로 숙여진 고개 밑으로 때가 묻은 노랑 양말이 보였다.
“너 이년 누가 그렇게 가르치던! 느이 에미가 어이구 금쪽같은 우리 딸년 어디가서 어른한테 고개 빳빳이 쳐들고 아래위로 훑어보그라 그라던? 이년 가랑이를 찢어 버릴라!”
나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비명도 못 지르고, 그냥 잡힌 머리채가 뽑혀나갈 때마다 아아아아 신음소리만 내었다. 이 여자를 직접 맞닥뜨리게 되면 어떤어떤 말을 해 주리라고 맘속으로 몇 번 상상을 해본 적도 있었는데 그 중 아무것도 생각나지를 않았다. 하기사, 생각이 났어도 목소리가 턱 막혔으니 별 소용 없기는 매한가지다.
“개같은 년, 너 몇호야? 어디 살어?”
아줌마, 저 810호예요. 만날 순찰돌러 오시잖아요. 그나마 그 여자가 내 얼굴을 몰랐기에 망정이었다. 내가 810호임을 알았더라면 상황은 더 나빠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이 수라장보다 더 나쁜 상황이 있기는 할 것인지?
“이 걸레같은 년, 내가 우습냐 요년아, 빼딱구두 신고 차려 입으니까 세상 사람들이 그냥 다 천해 보이고 우스워 보이지? 에라 이 갈보년아, 가랑이가 문드러 뒈질 년!”
한 움큼의 머리털이 후두둑 뽑혀나가고 마침내 그녀의 갈고리같은 손이 나를 풀어 주었다. 나는 그 반동에 비칠거리다가 벌렁 자빠졌다. 도망을 가고 싶어도 8층 복도 난간에서 떠밀려 죽을것만 같다. 802호는 그런 나를 보며 흐흐 웃는다.
“왜 말을 못해? 가랑이만이 아니라 아가리부터 찢어 주레? 왜 암말도 못하고 그렇게 개구리처럼 벌렁, 아이고 흐흐, 나자빠져 있냔 말야.”
이만한 소란이면 무슨 일인가 나와볼 법도 하지만은 구경꾼은 한 명도 없다.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패악스러운 802호 성질을 아니 알아서들 모른척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좀 나와 주었으면. 말리는 사람 아니라 구경꾼이라도 한 사람 있으면, “왜 이러세요,” 항의해 볼 용기라도 어떻게든 그러모으련만.
어느 집인가에서 현관문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러닝셔츠에 반바지인지 트렁크인지를 입은 남자가 양복에나 신는 구두를 신고 후다닥 달려온다. 남자는 아무 말도 않고 802호의 따귀부터 냅다 갈겼다. 걸걸한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정강이를 그는 구둣발로 냅다 찬다. 구두에 부딪친 여자의 정강이에서는 투박한 소리가 난다. 그녀는 똑 아까의 나만큼 볼썽사나운 자세로 자빠졌다. 그 바람에 발목 길이의 치마가 무릎 위까지 들춰진다. 여자의 다리는 구부러진 모양새가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미친년, 또 지랄이야!”
남자는 여자를 정말 개 패듯이 팼다. 그가 하필이면 슬리퍼도 아니고 운동화도 아닌 구두를 신고 나온 것은 의도적인 일이었던 듯도 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음식물쓰레기 봉지가 터져 여자는 오물 범벅이 되었다. 코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의 발길질은 얼굴이고 어디고 망설임없이 꽂힌다. 그러다 손이 심심하면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 올려서 간간이 따귀를 날렸다. 여자는 큰 소리도 못 내고 끙끙거리면서 뒤척거린다. 울음소리도 짐승같은 여자였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머뭇거렸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것 같기도 했다. 문득 생각난 듯이 이쪽을 돌아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핏발선 학대자의 눈이 아니었다. 그는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이 심지어 싱글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아즈마이는 많이 놀라셌을 건데 들어가소.”
내가 어물어물하자 남자는 그 여자의 손목을 잡고 복도로 끌고 갔다. 여자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용을 썼으나 자루처럼 끌려갈 뿐이었다. 어느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복도에 비가 들이쳐서 온통 물바다였다. 귀가 먹먹했다. 802호 여자의 여보 한번만 살려줘, 한번만 살려줘 하는 애원과 빗소리 울음소리..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9월로 접어들자 한풀 꺾였다. 바람은 제법 선선하고 남편과 나의 관계도 원만하다. 남편은 나의 퉁퉁해져오는 배에 정을 붙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퇴근길에 그가 종종 불필요한 아기 용품을 사 가지고 오면 나는 장난스레 핀잔을 주면서도 그를 일등 아빠라고 추켜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불륜 상대가 아니라 친구라던 그 여자와는 더 이상 만나지 않는 눈치였다. 마치 그런 일은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말끔했다. 남편은 작은방 창문에 커튼을 달아 주었다. 그의 배려는 고마운 것이기는 했으나 커튼이 제 기능대로 가리개 역할을 한 적은 없다. 날씨가 덥다 싶으면 나는 언제고 작은방 창문을 활짝 열었다. 한동안 그 여자를 마주칠까 두려워 엄두를 못 냈던 밤 산책도 재개했다. 지난번에 그러저러 되고나서부터, 나는 왠지 802호가 그렇게 무섭지 않다. 외려, 얼핏 보이던 그 여자의 의족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 여자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을 생각하면 경멸 섞인 동정 같은 것들이 속에서 꿈틀거리곤 했다. 802호를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간 한껏 나를 위협해 오던 상대의 몰락을 본다는 것은. 어디에서 드러내 놓고 말할 수는 없어도 나는 그 즐거움을 은밀히 간직했다. 802호가 영 조용한것도 나의 동정표에 한몫을 하였다. 그러나 혹 나중에라도 또 그 여자가 내게 패악을 부린다면 나는 이 미친년 고만 좀 지랄하라고 말해줄 작정이기는 하다.
“810호, 공문 받아가요.”
경비실 앞에는 낯이 익은 듯도 한 동네 여자 둘이서 열심히 쑥덕거리고들 있었다. 언뜻 들으니 802호 여자의 이야기인 것 같아 나는 자리를 쉬이 떠나지 못하고 뭉그적거렸다. 그 여자들이 내게 말이라도 한마디 건넬라 치면 지난번에 본 의족이며 802호 아저씨의 매질에 대한 것을 줄줄이 털어놓을 참이었다.
“난 801혼데요, 팔층 살면 그 이상한 아줌마 알지요? 만날 시비 걸고 다니던.”
다행스럽게도 여자 중 한명이 내게 아는 척을 한다.
“네에, 그 다리 불편하신.”
나는 짐짓 평정을 가장했다.
“그것도 그 집 아저씨가 그래 맨들어 놓은 거래요. 때려서.”
내가 무어라고 말을 하려는데 경비가 끼어들더니 말하기를,
802호 아주머니가 남편한테 고만 맞아 죽어버렸다고..
부스러기*
2007/10/08 03:24, m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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